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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2005] 퀴어란? 단어의 역사와 변화 (성소수자, 문화, 정체성)

coloroflotus 2025. 6. 2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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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 제이크질렌할 히스레저
브로크백 마운틴 / 제이크질렌할 히스레저

 

동성 간 사랑을 다룬 영화는 오랫동안 사회의 편견과 검열 속에서 제한적으로만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퀴어 영화는 사랑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며 점차 중심 무대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퀴어 로맨스를 대표하는 두 작품, 브로크백 마운틴(2005)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을 중심으로 각 영화의 배경, 연출, 감성의 차이를 비교해보고, 퀴어 영화의 흐름을 짚어보겠습니다.

근데 퀴어(Queer)가 무슨 뜻일까?

퀴어는 원래 '이상한'을 뜻하는 단어였으나, 20세기에는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나 1980~90년대 성소수자 인권 운동 속에서 이 단어는 당사자들에 의해 재전유(reclaim)되었고, 이후 LGBTQ+ 전체를 아우르는 정체성과 문화의 상징으로 변화했습니다.

오늘날 퀴어는 단순히 성적 지향이 아니라, 정해진 젠더·섹슈얼리티의 틀을 넘는 다양성과 유동성을 의미하는 용어로도 사용됩니다.

시기 의미 문화적 맥락
16세기 이상한, 낯선 일반 형용사
20세기 초 게이 비하어 성소수자 차별 언어
1980~90년대 정체성 선언 퀴어 네이션, HIV 운동
1990년대 이후 퀴어 이론 성·젠더 이분법 해체
현재 포괄적 성소수자 용어 다양성·유동성 강조

 

그럼 back to movie!

시대와 배경이 만든 감정의 깊이

브로크백 마운틴은 1960~80년대 미국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1980년대 이탈리아 북부의 여름이 무대입니다. 두 영화 모두 시대적으로는 비교적 최근이지만, 두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문화적 분위기는 극명하게 다릅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주인공 잭과 엔니스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시골 지역에서 살아가는 목장 노동자들입니다. 남성성과 전통적 가치가 강한 사회에서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존재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며, 평생을 억압 속에서 살아갑니다. 특히 엔니스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대신 사회적 안정과 체면을 택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끝내 후회와 상실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죠. 반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와 올리버는 문화적으로 훨씬 개방적인 환경 속에서 관계를 시작합니다. 이탈리아의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풍경, 자유로운 부모의 태도, 그리고 지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집안 분위기는 두 사람의 감정을 부드럽게 형성시키는 토양이 됩니다. 물론, 이들도 ‘정체성’이라는 벽에 부딪히지만, 최소한 서로를 사랑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허락되었기에 이별조차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결과적으로, 배경이 되는 사회의 수용도와 문화적 분위기는 사랑의 형태와 감정의 밀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것으로 보여집니다.

감성의 결 vs 연출의 미학

브로크백 마운틴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서로 다른 감정의 결을 갖고 있습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절제된 감정의 미학을 추구합니다. 잭과 엔니스는 사랑을 말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눈빛, 침묵, 어깨 너머로 주는 한숨 같은 것으로 감정을 표현하죠. 특히 셔츠를 껴안는 장면이나, 모닥불 앞에서의 짧은 포옹, 피크닉 후 격렬한 싸움 장면 등은 절제된 연기 속에서도 강렬한 감정 폭발을 이끌어냅니다. 앙 리 감독은 시나리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침묵과 자연 속 배경으로 말합니다. 반대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더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그립니다. 두 주인공의 교감은 음악, 시, 음식, 공간 등 오감의 요소와 함께 촘촘하게 직조되어 있습니다. 엘리오가 피아노를 치며 감정을 은근히 표현하거나, 벽난로 앞에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흘려보내는 장면은 관객이 직접 그 감정에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듭니다.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시각적 아름다움과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영상미와 교차 편집으로 이끌어냅니다. 이는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감각적 체험으로써 영화가 존재하게 만들죠. 두 영화 모두 감정 전달에 탁월하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은 ‘억제’를 통해 감정의 깊이를 채우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표현’을 통해 감정의 아름다움을 확장합니다.

퀴어 비극의 흐름과 영화사 속 위치

브로크백 마운틴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모두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다루지만, 그 끝은 다르게 구성됩니다. 브로크백은 사회의 억압과 내부의 두려움 때문에 결국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비극적인 죽음과 고독한 생존이 남습니다. 엔니스는 생애 마지막까지 그 사랑을 되새기며 살아가지만,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자각 속에 갇혀 있죠. 반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현실의 선택에 따른 이별이지만, 그 사랑은 상처 속에서 엘리오의 일부로 남습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성장해가는 모습은 가슴 아프지만 따뜻한 여운을 줍니다. 죽음은 없지만, 감정적으로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나는 영화입니다. 이 두 영화는 퀴어 영화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아카데미 수상작 중 처음으로 남성 간 로맨스를 정면으로 다룬 메이저 영화였고, 이후 퀴어 영화가 주류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 길을 따라 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퀴어 로맨스를 구현해냈고, 특히 젊은 세대와 여성 관객층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두 작품 모두 퀴어 장르가 단순한 '소수자 영화'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 감정과 정체성을 다루는 깊이 있는 장르임을 증명해주었습니다.

브로크백 마운틴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전합니다. 한 작품은 사회의 억압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감정을, 또 다른 작품은 찬란했던 여름의 기억으로 남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두 영화는 퀴어 영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섬세하고 진심 어린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추천할 만한 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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