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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투 비 블루 2015] 재즈 뮤지션의 삶, 쳇 베이커, My Funny Valentine💝

by coloroflotus 2025. 6. 19.
“I’ve made a lot of mistakes… but I’ve made some beautiful music, too.”
"난 많은 실수를 했어…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도 남겼지."

 

from《Let’s Get Lost》 다큐멘터리

삶의 후회와 자부심이 동시에 담긴 대사로 보입니다. 이 말은 체트 베이커의 인생 전체를 함축적으로 요약한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쳇베이커 사진
체스니 헨리 베이커 (Chesney Henry Baker) 1929년 12월 23일 ~ 1988년 5월 13일  (향년 58세)

본투비블루(Born to Be Blue)는 인간 체트 베이커의 불완전한 삶을 섬세하고 진지하게 재조명한 영화입니다. 트럼펫 연주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음악의 영광 뒤에 감춰진 고독과 중독, 그리고 파멸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품은 인물이었습니다. 영화 속 묘사를 바탕으로 체트 베이커의 실제 삶에 초점을 맞추며, 음악과 고통이 어떻게 그의 인생을 교차시켰는지 만나보려고 합니다.

체트 베이커, 빛과 그림자의 인물

1954년 밴드 리더로 데뷔한 그의 삶,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의 투옥, 그리고 그의 치아가 부러지고 악기를 다시 배우게 된 강도 사건까지. 그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봅니다.

 

체트 베이커는 1929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체스니 헨리 "쳇" 베이커 주니어는 오클라호마주 예일에서 태어나 프로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베이커는 몇 년 동안 육군 재즈 밴드 활동과 정규 음악 교육을 병행했습니다. 1952년 비밥의 선구자 찰리 파커와 함께 서부 해안 지역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피아노 연주자가 없는 바리톤 색소포니스트 제리 멀리건의 4중주단에 합류하면서 더 넓은 청중에게 다가갔습니다.

 

1950년대 초, 그는 전설적인 색소포니스트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과 함께한 쿨재즈 콰르텟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 시기의 베이커는 트럼펫 연주자뿐 아니라 감미로운 보컬 실력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대표곡 ‘My Funny Valentine’은 지금까지도 재즈 역사상 가장 섬세하고 감성적인 보컬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남성적인 힘보다는 유려하고 유약한 감성이 가득 차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상처받은 영혼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성과 동시에, 그는 끊임없는 자기파괴적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약물 중독은 그를 서서히 무너뜨리기 시작했고, 1966년에는 마약 거래와 관련된 폭행 사건으로 인해 앞니를 모두 잃게 되면서 음악 활동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영화 본투비블루의 주요 모티브 중 하나로 사용됩니다. 이 시점에서 체트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트럼펫 연주자로서의 자존심과 삶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그의 몸부림은 영화 내내 반복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는 늘 자유로웠지만, 동시에 책임과 현실을 피하고자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체트 베이커의 음악에는 이중적인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세련된 감성과 아름다운 멜로디 아래, 사랑과 고통, 무너지는 자아가 숨어 있습니다. 그는 음악으로 자신을 치유하고자 했지만, 그 음악이 그를 다시 무너뜨리는 모순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본투비블루, 음악과 고통의 교차점

본투비블루는 실제 체트 베이커의 삶에서 특정 시점을 각색하여 구성된 작품입니다. 영화는 196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체트가 마약으로 인해 음악계를 떠났다가 재기를 시도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현실과 허구가 교차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체트 베이커가 과거의 자신과 싸우는 모습을 시적으로 그려냅니다.

 

이야기의 어두운 면은 이렇습니다. 베이커는 어릴 때부터 헤로인에 중독되었습니다. 그의 삶(그리고 빠르게 쇠퇴해 가는 경력) 동안 그는 마약 자금을 얻기 위해 악기를 전당포에 팔았고, 마약 혐의로 투옥되어 국외로 추방당하기도 했습니다. 사기 혐의로 복역하기도 했습니다. 구타당하고 이가 빠지는 바람에 트럼펫을 불 수 없게 되기도 했습니다.(나중에 틀니를 맞고 어느 정도 성공적이긴 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 암스테르담의 한 거리에서 호텔 밖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머리에 상처를 입고 체내에 헤로인과 코카인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59세였습니다.

 

에단 호크는 단순한 모사에 그치지 않고, 체트 베이커라는 인물의 내면을 철저히 분석하여 그 감정까지 완벽히 표현해 냈습니다. 트럼펫을 부는 장면 하나하나에 그가 겪은 고통과 희망이 녹아 있으며, 특히 연인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입을 회복하고 트럼펫을 부는 장면은 그의 ‘인생의 재기’와 ‘음악가로서의 재탄생’을 상징합니다.

이 영화는 음악이 단순한 재능의 발현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감정과 상처, 삶의 방식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드러냅니다. 체트 베이커는 단순한 ‘뛰어난 재즈 연주자’가 아니라, 상처를 지닌 채 예술을 통해 버티고자 했던 존재였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체트의 싸움은 그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재기의 몸부림이 아닙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다시 살아가고자 했고,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은 냉정했고, 동료들과 대중은 과거의 그를 기억하며 현재의 그를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체트는 영화 내내 끊임없는 자기 의심과 싸우며, 음악조차도 그를 치유하지 못할 만큼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재즈와 고통, 체트 베이커의 존재 이유

체트 베이커의 삶은 ‘재즈 뮤지션의 전형적인 비극’으로 종종 묘사되지만, 그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살기 위해서’ 했던 인물이었고, 그의 트럼펫은 단순한 연주가 아닌, 고백이자 기도였습니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트럼펫 연주는 단순한 연주 장면이 아닌, 체트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언어로 기능합니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고, 사랑에서도 종종 무책임하지만, 음악 안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실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체트 베이커가 아직도 재즈 팬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쉬는 이유입니다.

재즈는 즉흥성과 감정의 솔직함을 중시하는 장르입니다. 체트는 이러한 재즈의 본질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음악으로 표현했고, 이는 곧 음악이 아닌, 한 인간의 존재 증명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연주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는 종종 인터뷰에서 “나는 내가 음악에서 느끼는 감정을, 트럼펫을 통해 그대로 표현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서 우리는 체트가 음악을 '직업'이 아니라 '삶의 도구'로 받아들였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며, 그 울림은 단순한 기술이나 테크닉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198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의문스러운 사고로 생을 마감했습니다.(58세였다고 하네요.)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는 체트의 불안정하고 안타까운 삶을 더욱 상징적으로 마무리 짓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음악이라는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고통과 인간적인 결핍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체트 베이커를 넘어 모든 예술가의 초상으로 다가옵니다. 그의 삶을 알고 다시 음악을 듣는다면, 우리는 그 멜로디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Chesney Henry Baker SIGN
Chesney Henry Baker